광화문과 세종대로 이전에는 ‘조선의 왕’들이 왕래하던 거리이자 각종 ‘관아’들이 밀집해 있던 거리였다.
꼭 알아야 할 소식입니다. 그들은 역사의 흔적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지를 모릅니다.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묻힌 일본의 흔적을 알고 반성해야 합니다.
조선 후기에도 광화문 앞에는 평평한 돌 받침대 위에 양쪽에 난간이 달린 ‘월대’가 서 있었다. 월대란? 궁궐의 대웅전과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놓인 넓은 기단의 대좌. 다양한 왕실 행사에 사용됩니다. 일반적으로 지붕이나 기타 시설이 없는 정사각형 플랫폼입니다. 월견대는 달을 바라보는 받침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.

광화문 앞 일제강점기의 흔적… 서울의 광화문과 세종대로 이전에는 조선시대 왕들이 다니며 각종 관청으로 붐볐다. – MBC뉴스 지윤수입니다.-
일제는 이 길을 훼손하고 전차용 철로를 깔았지만, 광화문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땅 속에 묻혀 있던 철로와 조선의 궁궐 일부가 발굴됐다.
(신희권/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) “조선총독부 수립과 함께 광화문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 경복궁 동쪽으로 옮겨갔고, 그 자리에는 통의동과 안국동으로 가는 기차가 달렸다.”
철로 아래를 70cm 정도 더 파보니 조선 후기 궁궐 시설과 군사 시설의 흔적도 보였다. 조선 후기에도 광화문 앞에는 평평한 돌 받침대 위에 양쪽에 난간이 달린 ‘월대’가 서 있었다. 1,400제곱미터의 이 방에서 왕은 과거와 유교 상소 등의 행사를 치렀습니다.
그러나 이 공간은 일제가 궤도를 옮기면서 훼손되었다.1917년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자재를 운반해야 한다며 철도를 부설하고 이듬해 전차 선로로 사용했다. 당시 동아일보는 “트램이 궁궐 앞마당을 파괴했고, 광화문 앞 ‘돌난간’도 철거할 것으로 보인다”고 보도했다.
(황평우/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장)
“조선의 심장인 광화문을 통과하면서 중요한 군사시설과 행정시설을 허물고 그 위에 철로와 도로를 깔았는데…”
1966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후 세종로 지하차도 건설 과정에서 매몰됐으나 57년 만에 광화문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일반에 공개됐다. 서울시는 광화문 월대를 복원하고 철길을 다른 곳으로 옮길 계획이다. MBC뉴스 지윤수입니다.
